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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헬스키친〉 (Musical Hell’s Kitchen) 관람 후기
    카테고리 없음 2026. 8. 19. 16:34

     

    글에 앞서, 저는 뮤지컬에 대해 깊은 지식이나 많은 관람 경험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뮤지컬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한 작품의 연출과 서사, 배우들의 연기와 넘버를 하나하나 생각하며 이렇게 진지하게 관람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뮤지컬을 오래 봐온 분들이 보기에는 다소 엉뚱하거나 부족한 해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한 관객이 공연을 보고 느낀 개인적인 감상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놓친 부분이나 다른 해석에 대한 피드백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개인의 의견 매우매우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15일 오후 2시, GS아트센터에서 뮤지컬 〈헬스키친〉을 관람했다.

     

    이날 캐스트는 앨리 역의 박지원, 저지 역의 박혜나, 미스 라이자 제인 역의 정영주, 데이비스 역의 테이, 그리고 넉 역의 박광선이었다.

     

     〈헬스키친〉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정보만 알고 공연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고 나니 생각보다 여러 장면과 감정이 눈에 들어왔다. 좋았던 부분도 있었고, 조금 아쉽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헬스키친〉의 1회차 관람 후기를, 기억이 선명할 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고 한다.

     

     

     


    앨리가 자신의 음악을 발견하는 순간

    줄거리는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따로 정리하지 않고, 바로 기억에 남았던 장면부터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앨리가 미스 라이자 제인의 피아노 연주에 처음 사로잡히는 순간을 고르고 싶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이어지는 〈Kaleidoscope〉가 특히 강하게 남았다.

    앨리가 그전까지 음악을 모르고 살아온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미스 라이자 제인의 연주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앨리가 처음으로 음악을 단순히 듣고 즐기는 것을 넘어 자신과 연결된 무언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보였다.

    사춘기의 답답함과 엄마에 대한 반항, 넉을 향한 감정까지. 앨리는 극 초반부터 여러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런 앨리가 미스 라이자 제인의 피아노 앞에서는 이전과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반항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도 아닌, 온전히 자신이 끌리는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피아노 소리에 이끌리듯 미스 라이자 제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앨리의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앨리 앞에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가능성이 작품이 진행될수록 점점 커지고, 결국 〈Girl on Fire〉 같은 넘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로 드러나는 과정이 매우 좋았다.

     


    낯선 시대와 공간을 얼마나 설득 할 수 있을까 bro

    전체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본 공연이지만, 몇 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한국 관객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헬스키친〉의 배경은 1990년대 뉴욕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이 경험하는 인종적 갈등과 차별, 그리고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한국에서 살아온 관객에게는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극 중에서는 분명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사건과 갈등이 등장한다. 머리로는 ‘이 사건이 이 인물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사건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감정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물론 이것은 한국 공연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전제로 하고 있는 시대와 공간 자체가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연이 모든 배경을 설명해주는 것만큼이나 관객 역시 당시 뉴욕의 사회적 분위기와 인물들이 놓여 있는 환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처음 이 작품을 접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배경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와닿을 수 있었다면 인물들의 감정과 선택 역시 더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많은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서사의 한계?

    또 하나의 아쉬움은 서사가 다소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헬스키친〉은 정해진 공연 시간 안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18살 앨리의 성장과 엄마 저지와의 갈등, 아버지 데이비스와의 관계, 미스 라이자 제인을 만나 음악을 발견하는 과정, 넉과의 사랑,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까지 모두 다뤄야 한다. 거기에 무엇보다 앨리샤 키스의 수많은 좋은 넘버들을 무대 위에서 충분히 보여줘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건은 조금 더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했다. 인물의 감정을 조금 더 따라가고 싶은데 이미 새로운 사건이나 넘버가 시작되는 느낌을 받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무조건적인 단점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한 가지 이야기를 깊게 파고들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덜어내야 하고, 서사를 위해 시간을 늘리다 보면 작품의 또 다른 핵심인 음악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헬스키친〉처럼 좋은 넘버가 많은 작품에서는 이야기를 얼마나 깊게 가져갈 것인가와 음악을 얼마나 충분히 보여줄 것인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몇 이야기가 조금 빠르게 지나간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동시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출처 : 에스앤코 S&Co [뮤지컬 헬스키친] HIGHLIGHT VIDEO 영상 캡쳐

     


    앨리의 독백

    또 하나 조금 어색하게 느꼈던 부분은 앨리가 관객을 향해 직접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앨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화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백이나 내레이션을 통해 다음 이야기를 연결하고 자신의 감정을 직접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형식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헬스키친〉이 결국 앨리 자신의 성장담이고, 앨리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상황을 통해 충분히 전달된 감정을 앨리가 다시 한번 설명하는 순간에는 살짝 몰입이 끊기는 느낌이 있었다.

    ‘이 장면은 그냥 배우의 표정과 연기로 남겨두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공연 전체를 방해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부분에서 크게 불편했던 점은 없었고, 결국 이것도 작품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식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국어로 들어도 좋았던 넘버들

    한국 공연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부분 중 하나는 넘버의 번역이었다.

    사실 나는 평소 영화나 시리즈, 뮤지컬을 볼 때 내용을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가능하면 원어 그대로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번역을 거쳐서 원래 문장이 가지고 있던 어감이나 리듬이 달라지는 순간 몰입이 확 깨져버리기 때문

    그래서 앨리샤 키스의 익숙한 노래들을 한국어로 듣는다는 것에 처음에는 약간의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그런 걱정이 거의 무색했다.

    〈If I Ain't Got You〉는 원어로 불렀기 때문에 제외하고, 한국어로 번역된 넘버 가운데 번역 때문에 거슬렸던 곡이 거의 없었다.

    한국어 음절을 억지로 멜로디에 끼워 맞췄다는 느낌도 없었고, 가사도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평소 같으면 ‘그냥 원어로 듣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 법 했는데 한번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엄청 신경을 썼구나 싶다.

     

    그리고 이건 번역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다시 들어도 앨리샤 키스의 곡들이 정말 좋다.

    〈Girl on Fire〉, 〈If I Ain't Got You〉처럼 이미 너무 유명해서 익숙한 곡들도 있지만, 극 안에서 인물의 이야기와 함께 들으니 원래 알고 있던 노래가 새롭게 들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결국 원곡 자체가 워낙 좋은 데다, 익숙한 곡의 매력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한국 관객이 극의 흐름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든 번역까지 더해졌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의 넘버들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GS아트센터 1열에서 본 헬스키친

     

    나 티켓팅 좀 치는듯 ㅋ

     

    이번 공연은 GS아트센터 1열에서 관람했다.

    1열은 장단점이 정말 극명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배우들을 정말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표정 변화 하나, 눈빛 하나, 숨을 쉬는 순간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정말 말 그대로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침이 튀는 것까지 보였다.

    그 정도로 무대와 가까이 붙어 있다 보니 배우들의 감정을 아주 세세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특히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에서는 객석에서 공연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바로 앞에서 그 인물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반대로 단점도 명확했다.

    너무 가까운 만큼 무대 전체를 한눈에 담기는 어려웠다.

    한쪽 배우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다른 쪽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을 놓치기도 했고, 군무나 조명, 무대 전체가 만들어내는 그림을 보기에는 확실히 가까웠다.

     

    몇몇 순간에는 음향이 살짝 먹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1열에서 들었던 경험이기 때문에 GS아트센터 전체의 음향 문제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좌석 위치에 따른 차이도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첫 관람을 1열에서 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볼 수 있는 경험은 또 그것대로 굉장히 특별했다.

    오히려 그래서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배우 한 명 한 명의 표정과 디테일을 가까이서 봤는데, 다음에는 조금 뒤쪽에 앉아서 무대 전체가 만들어내는 〈헬스키친〉을 봐야겠다


    박지원을 보러 갔는데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이 공연을 보러 간 가장 큰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박지원의 팬이기 때문이다. 

     

    박지원이 앨리라는 역할로 뮤지컬 무대에 선다는 것이 궁금했고,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박지원을 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박지원이라는 배우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무대와 조명, 작품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리고 공연을 보는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들까지.

    말 그대로,

     

    박지원을 보러 갔는데, 뮤지컬을 보고 나왔다.

    중간중간 자기 몸만한 페인트통을 들고다니는데 너무 귀여워서 미칠뻔했다




    앨리와 저지의 관계가 남았고, 미스 라이자 제인이 연주하던 피아노가 남았고, 넉과 앨리의 이야기가 남았다.

    〈Kaleidoscope〉가 남았고, 〈Girl on Fire〉등 미친 넘버들이 남았다. 

    그리고 공연을 보면서 내가 왜 이 장면에서는 좋았고, 왜 저 장면에서는 조금 아쉬웠는지 생각하게 됐다.

    아마 이것이 이번 공연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경험이 아닐까 싶다.

    뮤지컬을 많이 본 사람에게는 당연한 경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보러 가는 것’을 넘어, 하나의 작품을 바라보게 만든 공연이었다.

     

    분명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며칠이 지나서도 장면과 노래가 계속 떠오르고, 다음에는 다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면 나에게는 충분히 좋은 공연이었다. 정말로.

     

    못참고 사버렸다

     

    아직 〈헬스키친〉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추천하고 싶다. 특히 앨리샤 키스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익숙한 곡들이 극 안에서 어떤 의미로 다시 들리는지를 보는 재미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한 번 보고 나니 다른 앨리도 궁금해졌다. 이번에는 박지원의 앨리를 봤지만, 손승연과 박수하는 워낙 무대 경험이 많은 배우들이라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앨리는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같은 장면과 같은 넘버도 배우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서, 다음에는 다른 캐스트로도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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